빌딩관리의 새 장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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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을 제시하다

빌딩관리의 새 장 개막

빌딩관리사업부 발족(1977)

1970 삼성빌딩 기계실 내부. 체크리스트를 들고 기계를 점검하고 있는 빌딩 관리요원
1970년대 들어 빌딩관리의 개념은 질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겨울철 난방정도만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신축단계 시 건물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며 효율적 관리로 건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해 경제적 내용년수를 연장시키는 전문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72년 말 대연각호텔 화재로 경각심이 일고, 건물의 고층화ㆍ대형화와 함께 석유파동으로 관리의 효율화가 시급해졌기 때문이었다.
중앙개발이 빌딩관리사업을 처음으로 벌인 삼성빌딩은 입지여건, 시설, 기능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제일의 오피스빌딩이었다. 건물구조 면에서 내부공간 분할이 용이하도록 설계됐고, 시설 면에서는 발전기, 고성능보일러, 냉동기, 승강기 등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1970년대 중반까지 삼성빌딩의 공실은 7%에 불과했다. 1970년대 초반 서울시내에 빌딩이 급증하면서 당시 일반빌딩의 공실은 20~30%가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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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빌딩의 임대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중앙개발은 '과학적 빌딩관리의 실현'을 추구해 나갔다. 1969년부터 국내 최초로 '건물관리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업무를 표준화시켰고, 자재 규격화와 시설 자동화를 추진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건물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던 당시, 건물관리 업무의 표준화, 자동화, 규격화를 통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사실은 빌딩관리사업의 진일보였다.
중앙개발의 빌딩관리 기술은 1971년부터 다양한 건물의 관리를 지원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중앙일보 사옥, 신세계, 고려병원, 성균관대학교를 대상으로 점검과 보수기준을 정립해 주었다. 그리고 1976년 4월 삼성본관이 준공되면서 중앙개발의 빌딩관리사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삼성본관은 1966년 건축된 삼성빌딩과 비교해 규모와 시설에서 방대했다. 연면적이 8만 3640m²(2만 5301평)로 삼성빌딩의 7배나 되었고, 지하 4층, 지상 26층의 빌딩 내 모든 기기는 성능이 우수한 현대식 설비였다. 또 모든 시설을 방재센터와 중앙감시반에서 집중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10여 년의 삼성빌딩 관리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중앙개발로서도 최신 시스템을 갖춘 삼성본관의 대형 규모에 대처할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이에 따라 중앙개발은 1977년 7월 1일 동방생명(현 삼성생명)과 관리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빌딩관리사업부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빌딩관리사업부는 삼성본관의 관리조직을 그대로 존속시켜 빌딩관리과와 시설과 등 2개과로 구성됐다. 그러나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삼성본관의 정상적 운영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통합관리를 전개하지는 못했다.
1978년 하반기에 이르러 삼성본관의 운영이 본궤도에 올라서면서 빌딩 관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중앙개발이 관리하게 된 빌딩은 삼성본관, 중앙일보 사옥, 삼성빌딩, 신세계백화점 등 4개 건물과 신축예정의 동방여의도빌딩, 여의도TBC스튜디오를 합한 6개 건물이었다. 1978년 7월 1일 중앙개발 빌딩관리사업부는 별개로 운영해오던 삼성빌딩을 통합한 관리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한편, 그해 11월 신세계백화점, 1979년 6월 동방여의도빌딩을 수탁관리하는 등 매년 관리건물의 범위를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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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연료의 변화 관련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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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상의 변화와 함께 빌딩관리의 방법도 달라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연료였다. 1965년 중앙매스컴빌딩이 들어섰을 때의 연료는 석탄이었다. 기관실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질통으로 석탄을 날라야 했다. 하루종일 석탄을 나르다보면 연탄장수가 따로 없이 온몸이 새카맣게 되었다. 당시 빌딩의 사정은 어디나 그랬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벙커-C유로 바뀌었다. 석탄자루에 질린 직원들은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벙커-C유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벙커-C유는 액체이지만 상온에서는 마치 묵처럼 굳었다. 그래서 유조차 꼭대기에 올라가 긴 꼬챙이로 푹 찔러보고 양이 제대로 되어 있는 지를 확인해야 했다. 작업을 하고 나면 손이 온통 기름투성이가 됐다.
1980년대 후반 벙커-C유가 LNG로 대체되면서 작업환경이 깨끗해졌다. 보일러의 가동도 수동에서 자동으로 변화했다. 겨울철 새벽이면 미리 서둘러 덥히는 작업에 시달렸지만 보일러에 불이 붙고 나면 컴퓨터 화면으로 실내 온도를 살필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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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 삼성빌딩 기계실 내부
  • 국내 최초로 P.C.C.W 공법으로 건설된 삼성본관
  • 국내 제일의 오피스빌딩이었던 삼성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