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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산업의 고도화 선도

休 STORY

한국 골프의 미래다

한국 골프산업의 고도화 선도

동래칸트리크럽 위탁운용(1988), 잔디환경연구소 설립(1993)

1988 중앙개발에서 인수할 당시의 동래칸트리크럽
중앙개발은 1988년 7월 1일 부산의 동래칸트리크럽에 대한 위탁관리 계약을 체결, 안양칸트리크럽과 함께 국내 골프문화의 발전을 도모했다. 1971년 9월 개장한 동래칸트리크럽은 1978년 삼성종합건설(현 삼성에버랜드)에서 인수, 운영했으나 건설업체가 골프장을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골프장 건설 때부터 지원을 계속해온 안양칸트리크럽의 역량을 바탕으로 동래칸트리크럽을 위탁운영해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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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칸트리크럽은 남부지역을 대표하는 회원 중심의 고품격 골프클럽으로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아름드리 고목의 자연미와 금잔디로도 불리는 국내 유일의 고려지로 조성된 최고의 코스는 골프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남쪽의 따뜻한 기후 영향으로 휴장 기간 없이 365일 연중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 큰 장점이었다. 또 요금을 선불과 후불로 고객의 선택에 맡기는 고객선택제를 실시하는 등 고객편의 위주로 서비스를 향상해 나갔다.
한국 골프의 종가로 우뚝 선 안양칸트리크럽은 1976년부터 시작한 페어웨이 잔디교체공사를 1982년 마무리함으로써 공의 부상(浮上) 상태가 좋고 밟을 때 감촉이 부드러운 코스를 갖게 됐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강조해왔던 '코스에 떨어지는 공이 잔디 위에 떠 있고, 코스를 걸을 때 융단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구현한 것이었다. 안양칸트리크럽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93년 12월 1일 잔디환경연구소를 설립하며 우리나라 골프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 잔디환경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기업부설 잔디 전문 연구기관으로, 크게 잔디의 생리·생태, 토양, 병리, 곤충, 육종·생명공학의 연구분야에 대해 전문 연구원들이 활발하게 학술활동을 벌였다.
1993.12.01 잔디환경연구소 설립
특히 1998년 6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전자 분석을 통한 안양중지(安養中芝)의 특허출원과 상표등록을 하여 WTO 체제 하에서 종자시장 개방과 함께 밀려 들어올 수입잔디에 맞서 우리고유의 토종 잔디보호, 육성 및 보급에 앞장섰다. 1974년 5월 중순경 매탄동 번식장에서 발견된 안양중지는 마디와 마디 사이가 짧고 잎이 빳빳해 전체적으로 생동력이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안양칸트리크럽이 1976년부터 1982년까지 페어웨이로 교체한 잔디가 바로 이 안양중지였다. 이후에도 여러 골프장의 페어웨이, 티 식재와 그룹사의 조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잔디환경연구소는 이를 과학적인 분류에 의해 고유 브랜드로 확립함으로써 불모지와 같던 국내 잔디연구를 학문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2002년에는 국내 최초로 육종을 통한 잔디 신품종(잔디명: Benest 1~7)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최고의 한국잔디인 안양중지와 동래 고려지의 육종을 통해 개발된 신품종 7종은 전부 국내 특허를 받았으며, 그중 ‘Benest 1’ 품종은 미국에서도 특허를 받아 한국 잔디개발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와 함께 골프장의 코스관리를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과 제품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골프장 코스관리 컨설팅을 확대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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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잔디, 안양중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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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개장한 안양칸트리크럽은 내장객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병철 선대회장이 생각하고 있던 '융단 같은 코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좋은 품종의 잔디를 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해 여름 5번홀 연못가에서 우연히 들잔디보다 잎이 좁고 빳빳해 페어웨이에 심기에 적합한 잔디가 발견됐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이 잔디의 형상이 들잔디도 아닌 그리고 고려지도 아닌 것이라 하여 '중지(中芝)'라 명명했다. 이것이 안양중지의 기원이었다.
이 중지의 자생지를 알기 위해 뿌리를 캐어 보니 개흙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이에 서해안에서 자생하던 갯잔디를 조사한 결과 안양중지와 유사한 품종의 잔디가 인천과 홍성 해안 일대에서 자생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를 매입, 집중재배해 1969년 11월부터 1970년 4월까지 일부 지역에 이식교체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어긋났다. 잔디는 위로만 자라고 밀도는 형편없이 빈약했다. 결국 서해안의 갯잔디는 안양에서 찾던 잔디와는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
안양칸트리크럽은 좋은 잔디 찾기에 다시 나섰다. 1972년 5월부터 1974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잔디를 수집해 수원 매탄동에 대규모 번식장을 조성했다. 단지 골프장용 잔디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국토개발사업이 한창이던 용인단지에도 막대한 양의 잔디가 필요했다.
마침내 1975년 5월 중순, 매탄동 번식장에서 안양에서 발견했던 것보다 질이 좋은 잔디를 발견했다. 1968년 발견한 중지보다 잎이 더 좁고, 마디와 마디 사이가 짧고 잎이 빳빳해 전체적으로 생동력이 뛰어났다. 페어웨이에 심기에는 아주 적격이었다. 이 잔디는 들잔디도 고려지도 아니었다. 갯잔디는 더욱 아니었다. 바로 오늘날의 안양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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